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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어릴 때 어떤 장난감을 갖고 놀았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오늘 소개할 이 기업의 장난감을 갖고 놀았을 것 같은데요. 저 역시 마트에서 부모님께 이것을 사달라고 애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도, 제 주변에 이것을 취미로 조립하거나 수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죠. 바로 레고(LEGO)인데요. 우리들의 유년시절을 장식한 레고는 어떻게 성장하여 현재까지 사랑받고 있을까요? 오늘은 레고의 시작과 성장, 그리고 위기와 부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레고의 창립자인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은 1891년 덴마크에서 태어나 목수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수습공 과정 이후 고향을 떠나 돈을 모았고, 1916년 덴마크의 빌룬이라는 마을에서 목공소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농부를 대상으로 옷장, 창문, 사다리 등의 일상용품을 판매했으며, 당시에 장난감은 관심도 없었죠.
올레는 레고를 설립하기 전부터 크고 작은 위기를 겪었습니다. 우선 1924년에는 셋째 아들 갓프레드(Godfred)가 목공소에서 놀다가 화재를 일으켜 목공소와 집이 타버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1929년 미국에서 발생한 대공황은 1930년대에 이르러 덴마크에 있는 올레의 사업에 악영향을 미쳤죠. 사람들이 가구, 창문 등을 주문하지 않게 되었고, 결국 1932년에 직원들을 모두 해고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올레의 아내도 정맥염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올레는 포기하지 않고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판매될만한 저렴한 제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장난감을 만들어보기로 결정한 올레는 아들 갓프레드와 함께 한 땀 한 땀 장난감을 만들며 목공소를 운영해나갔죠. 이후 장난감이 인기를 얻으며 직원은 6명으로 늘어났고, 올레는 장난감 제작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장난감 회사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게 되었는데요. 이때 '잘 놀다'는 의미의 덴마크어 'LEG GODT'의 앞부분을 딴 LEGO라는 브랜드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올레는 제품의 품질을 매우 중요시했습니다. 재료 선정부터 꼼꼼히 살피며 고급 너도밤나무 목재를 사용하였고, 장난감에 더욱 매끄러운 곡선을 구현하기 위해 3000DKK(덴마크 화폐 단위로, 당시 집 한 채의 가격은 약 4~5000DKK)의 독일제 밀링 머신을 구입하기도 했죠. 품질 집착에 대한 일례로, 하루는 그의 아들 갓프레드가 수익성 확대를 위해 3번 칠하던 코팅을 2번만 칠하고 올레에게 자랑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올레는 화를 내며 다시 코팅을 칠해서 직접 제품을 납품하고 오라고 했고, 추후 회사를 물려받은 갓프레드는 당시를 회상하며 해당 사건을 계기로 '좋은 품질을 위한 디테일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말하기도 했죠.
2차 세계대전으로 너도밤나무 수급이 어려워진 레고는 새로운 재료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바로 플라스틱인데요. 올레는 플라스틱 장난감을 만들기 위해 1946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 시연회에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키디크래프트(Kiddicraft)가 개발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브릭 장난감을 처음 보게 되었죠. 블록 장난감 샘플을 챙긴 올레는 덴마크 최초로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를 구입하여 키디크래프트와 유사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였습니다. 연구 끝에 사이즈와 디자인 모두 유사한 제품을 만들어냈으나, 레고 브릭의 성과는 지지부진했습니다.
* 참고. 브릭 장난감의 역사
키디크래프트가 브릭 장난감을 처음 개발한 것은 아닙니다. 12년 전인 1934년, Rubber Specialists Company가 고무 재질로 만든 브릭 장난감 Bild-O-Brik을 처음 개발한 것인데요. 이후 1935년 영국의 Premo Rubber Company가 만든 브릭 장난감, 1939년 미국 Halsam Products가 만든 나무 재질의 브릭 장난감 등을 거쳐 키디크래프트의 플라스틱 브릭 장난감이 나타났습니다. 키디크래프트는 블록의 아랫부분이 비어있고 양쪽 끝에 홈이 있어서 단단하게 고정할 수 있다는 차별점을 갖고 있었죠. 당시 키디크래프트는 레고가 유사한 제품을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고, 1981년에 레고가 키디크래프트 브릭 장난감의 모든 권리를 사면서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1954년 어느 날, 갓프레드는 장난감 판매 담당자와 장난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기존의 장난감에는 시스템이 없다는 불평을 듣게 되었죠. 이후 장난감의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던 갓프레드는 레고의 여러 제품 중 브릭 장난감만이 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레고를 고도화하게 됩니다. 그렇게 레고는 8대의 차량이 포함된 브릭 도시 세트를 출시하였고, 아이들이 교통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레고의 판매량은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레고는 제품을 개선하고 확장해 나갔습니다. 우선 1958년에는 쉽게 분리되는 블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브릭 하부에 원통 모양의 구조를 추가하는 특허를 확보했습니다. 이후 오차의 범위를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 브릭의 소재를 ABS로 변경하였고, 1965년에는 Lego Futura라는 제품 개발 부서를 설립했습니다. 이 외에도 바퀴 모듈을 통해 다양한 차량 형태를 만들 수 있게 하고, 피규어를 추가하여 역할 놀이를 가능하게 하는 등, 레고는 아이들이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장난감 구성을 갖춰나갔습니다.
비록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경제위기가 발생하며 인원을 감축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지만, 레고는 '시스템 속의 시스템'이라는 전략으로 특정 테마를 가진 제품들을 출시해나갔습니다. 레고랜드 타운, 레고랜드 캐슬, 레고랜드 스페이스, 레고 해적 등의 테마를 설정하고 시리즈 제품을 출시한 것이죠. 추가적으로 레고는 엔진과 모터 기능을 추가하며 레고의 기술과 흥미를 더해나갔습니다. 그리고 '어린이 창의성 개발에 도움이 된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레고는 유럽과 미국에서 고속 성장을 이어나갔습니다.
성장을 거듭하던 레고는 1990년대 중반부터 매출이 급감하며 위기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크게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우선 첫 번째 외부적 요인은 1958년 출원한 독점 특허가 1988년 만료되며 유사한 저가 제품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레고의 로고만 빠진 동일한 제품들이 시장에 출시된 것입니다. 또한, 당시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가 보급되며 아이들의 놀거리가 많아졌다는 점도 레고의 경쟁력을 약화시켰습니다.
그리고 레고는 외부적 변화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우선 신제품을 확대하여 연간 신제품 수가 1996년 160종에서 1998년 327종으로 급증했는데요, 호환되지 않는 특수 블록이 늘어나며 정체성이 약해지고 수익성이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아동복, 시계, 출판 등의 다양한 시장에 문어발식으로 진출하며 사업을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했죠. 또한 1968년에 개장하여 한 곳(덴마크)에서만 운영하던 레고랜드를 3개 지역(1996년 영국, 1999년 미국, 2002년 독일)에 추가 개장하며 사업을 더욱 확장했습니다.
레고는 2003년과 2004년에 적자를 기록하였고, 세계 최대의 장난감 회사 중 한 곳이자 바비인형의 제조사인 마텔에 인수된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매각도 검토되었으나, 결국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기로 결정하죠. 그렇게 레고는 2004년에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인 34세의 욀겐 비 크누드스토르프를 새로운 CEO로 영입합니다. 그리고 CEO로 취임한 크누드스토르프는 제품의 본질에 다시 집중해야 한다고 판단하며, 블록으로 돌아가기 위한 전략(Back to the Brick)에 착수했습니다.
우선 크누드스토르프는 구조조정을 통해 핵심에 집중했습니다. 직원 8000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감원 조치를 실시했고, 레고랜드 지분 70%를 사모펀드에 매각했죠. 또한, 자체적으로 추진하던 아동복, 시계, 출판, 미디어 등의 사업을 라이선스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이외에도 발주 프로세스 정비를 통해 제품 조달업체를 약 11000개에서 2200개로 줄여서 비용을 감축했으며, 무엇보다 '장난감 시스템'에 맞지 않는 특수 블록을 줄이기 위해 전체 부품 수를 약 13000개에서 7000개로 축소했습니다.
추가적으로, 레고는 핵심에 기반한 신제품을 출시하고 타겟을 확대했습니다. 기존의 콘텐츠를 레고로 만든 것인데요. 다양한 미디어 기업과의 협업으로 스타워즈, 해리포터, 배트맨, 반지의 제왕 등 유명 콘텐츠를 레고로 출시한 것입니다. 또한 레고무비, 닌자고 등의 영화를 개봉하여 기존의 레고를 콘텐츠화하기도 했죠. 그렇게 다양한 제품과 콘텐츠를 통해 타겟을 넓히고 난이도가 높은 성인용 아키텍처를 출시하며, 레고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키덜트(Kidult) 층을 성공적으로 공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레고는 소비자 참여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고객을 핵심 자산으로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으로 CUUSOO(공상)라는 크라우드 소싱 프로젝트가 있는데요. 이는 소비자가 직접 아이디어를 제안하여 발매된다면 해당 제품 순이익의 1%를 지불받게 되는 방식입니다. 레고 입장에서는 R&D 비용 없이, 수많은 아이디어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죠. 실제로 2012년 출시된 제품 중 60%가 고객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상품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전략들은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CEO 영입 후 1년 만에 레고는 흑자 전환에 성공했으며, 10년간 매출은 5배로 확대되었습니다. 영업이익은 1조 원을 넘었으며, 2017년에는 세계 500대 브랜드 보고서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브랜드 1위에 뽑히기도 했죠.
이제 레고는 아이들의 장난감에서 어른들의 장난감까지 의미가 확대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글을 쓰면서 레고를 구입해서 조립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레고가 앞으로도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난감으로 남을 수 있을지 더욱 기대가 됩니다.
* 참고자료
- 포스코경영연구소: https://www.posri.re.kr/files/file_pdf/63/3765/63_3765_file_pdf_POSRI_%EB%B3%B4%EA%B3%A0%EC%84%9C_20150422.pdf
- 레고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X1umlz9cRKk
- 세상모든지식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CP-vbaZmC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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