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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기업 분석: 운동화를 넘어 IT 기업으로

기업 분석

by 호박너구리의 분석블로그 2021. 8. 2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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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나이키(Nike)하면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Just do it이라는 슬로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이클 조던과의 콜라보, 한정판 및 커스텀 제품 등 생각나는 것이 많으실 텐데요. 나이키는 어떻게 대중들에게 이렇게 강하게 각인되는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요? 오늘은 나이키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나이키의 시작: 육상 스승과 제자의 의기투합

나이키는 한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학생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육상선수 출신인 '필 나이트'라는 사람인데요. 그는 '일본의 기능성 운동화가 미국의 운동화 시장을 바꿀 것이다'는 내용의 석사 논문을 작성합니다. 그리고 그는 일본에 찾아가서 현재 아식스(Asics)의 전신인 오니츠카 운동화의 미국 내 판매권을 획득하게 되는데요. 필 나이트는 오니츠카로부터 받은 샘플을 육상선수 시절 자신의 코치였던 빌 바우어만에게 보냅니다. 샘플을 받아 본 빌 바우어만은 나이트에게 동업을 제안하고, 둘은 1964년에 '블루 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를 설립하게 되죠.

 

사업을 시작한 이후, 필 나이트와 빌 바우어만은 본업과 사업을 병행했습니다. 필 나이트는 회계사 일을 하면서 틈틈이 전단지를 돌리고, 빌 바우어만은 육상코치를 하면서 계속해서 신발을 연구하고 이를 오니츠카에 제안했죠. 비록 트럭에 제품을 싣고 대학 육상부를 찾아다니며 주먹구구식으로 운영을 시작했지만, 1965년에 필 나이트의 대학원 동기였던 '제프 존슨'을 1호 직원으로 고용하고, 1966년에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 첫 직영 매장을 시작하는 등 회사는 안정감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운동화 판매량 역시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블루 리본 스포츠는 설립 이후 5년 동안 매년 매출이 2배 상승했고, 1970년에는 60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하게 되었죠.

 

# 나이키의 성장: 자체 브랜드 설립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성공

그러나 1971년 오니츠카와 블루 리본 스포츠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필 나이트와 빌 바우어만은 독자적인 제품 생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브랜딩을 기획하며 새로운 이름과 로고를 찾게 되었죠. 새로운 브랜드의 이름은 1호 직원인 '제프 존슨'의 제안이 채택되었습니다. 그는 꿈에서 승리의 여신 니케를 보았다고 말하며, 니케의 영어식 이름인 '나이키(Nike)'를 제안했는데요.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름이지만, 당시에는 창업자가 디멘션6(Dimension 6), 팰콘(Falcon) 등의 다른 이름을 제안하며 나이키라는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로고는 당시 포틀랜드 주립대의 디자인 전공 대학원생 '캐롤라인 데이비슨'에게 요청해서 제작되었는데요. 그녀는 육상트랙의 코너 모양을 따서 현재의 나이키 로고인 스우시(Swoosh) 로고를 제작했습니다. 필 라이트는 로고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로고를 넣은 운동화의 생산이 급해서 일단 로고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죠. 현재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스우시 로고와 나이키라는 이름이 사실 창업자들의 반대에 부딪혔었다는 사실이 신기하지 않나요?

 

* 나이키 로고의 금액은?

캐롤라인은 당시 로고를 제작한 대가로 35달러(시급 2달러 x 17시간 30분)를 받았습니다. 최고로 평가받는 로고의 대가라고 생각하면 아쉬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그녀는 은퇴하기까지 나이키에서 일했으며, 1983년에는 필 나이트가 감사의 의미로 나이키 주식 500주와 스우시 로고가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금반지를 선물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독자적인 브랜드로서 출시된 첫 운동화는 바로 1972년에 나온 코르테즈(Cortez)입니다. 이는 빌 바우어만이 개발한 와플솔(Waffle Sole) 기술을 활용하여 생산되었는데요. 와플솔이란, 자체 운동화 개발에 집중하던 빌 바우어만이 와플 굽는 기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개발한 기술입니다. 바로 액체 상태의 고무를 와플 굽는 기계에 넣어서 고무 스파이크를 제작하는 방식으로,운동화를 보다 가볍고 마찰력이 강하도록(미끄럼 방지와 추진력 향상에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주었죠.

 

그리고 나이키는 1977년에 항공우주학자 프랭크 루디와 함께 신발 밑창에 압축 공기를 주입한 '에어 쿠셔닝 기술'을 개발합니다. 이후 와플솔과 에어 쿠셔닝 기술을 조합하여 나이키 최초의 마라톤화 '테일윈드(Tailwind)'를 제작하고, 1982년에는 에어 쿠셔닝 기술이 담긴 최초의 농구화 '에어포스원'을 선보이게 되죠. 이러한 나이키의 운동화들은 원래 운동선수를 위해서 만들어졌지만, 예쁜 디자인으로 보통 사람들도 많이 찾게 되었습니다. 특히 1970년대 미국에서는 조깅 열풍이 불었는데요. 아디다스가 '조깅은 스포츠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 런닝을 위한 기능과 대중적인 디자인을 모두 갖춘 나이키는 승승장구하며 스포츠 브랜드의 선두주자로 떠오르게 됩니다.

 

# 나이키의 도약: 위기를 극복하게 만든 브랜딩

아디다스가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여 선두자리를 나이키에 내어준 것처럼, 나이키도 1980년대 중반에 같은 위기를 겪게 됩니다. 당시 미국 시장에는 에어로빅 열풍이 불었는데, '에어로빅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며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렇게 나이키는 리복(Reebok)에게 선두자리를 내어주게 됩니다.

 

하지만 나이키는 공격적인 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는데요. 이때 등장한 나이키의 영웅이 바로 '마이클 조던'입니다. 나이키는 당시 갓 데뷔한 신인인 마이클 조던과 농구화 및 의류에 대한 후원 계약을 체결하며, 그를 위해 에어 조던 1(Air Jordan 1)을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에어 조던은 출시 3년 만에 1억 5천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하고, 조던 라인은 현재 독자적인 브랜드로서도 승승장구하고 있죠. 이후 나이키는 마이클 조던 외에도 타이거 우즈나 코비 브라이언트, 호날두, 로저 패더러 등 많은 스포츠 스타들을 후원하며 브랜드 가치를 키워나갔습니다.

 

또한, 광고대행사 '위든 & 케네디'와 진행한 1988년 캠페인도 나이키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주는 데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때 등장한 슬로건이 바로 'Just do it'인데요. 간결하지만 도전적인 이 슬로건은 능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며 30년이 지난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 나이키의 현재와 미래: 운동화를 넘어 IT 기업으로

나이키는 2017년 무렵부터 성장률이 둔화되며 위기를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성장률 둔화의 이유로는 '트렌드를 쫓지 못했다'는 점이 꼽혔는데요. 우선 당시에는 운동화들이 일상화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운동화를 애용하게 되면서, 구찌나 발렌시아가 등의 명품 기업들도 편안하면서 심플한 디자인의 신발을 출시했는데, 이에 비해 나이키는 기능성 운동화에만 집중했던 것이죠. 또한 당시 패션 업계에서 떠오르던 복고 트렌드에 대해, 아디다스가 70년대 인기를 끌었던 '스탠 스미스'를 리뉴얼하여 출시한 것과 달리, 나이키는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나이키는 변화를 위해 2017년 하반기부터 새로운 전략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온라인 판매와 직접 판매를 강화하는 D2C(Direct to Customer) 전략인데요. 나이키는 이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고, 데이터를 확보하여 소비자의 트렌드를 따라잡고자 했습니다.

 

우선 나이키는 전략 실행을 위해 판매처를 축소했습니다. 기존에는 나이키 제품을 판매하던 브랜드만 3만 곳이 넘었는데, 이제는 전용 공간을 내어주는 오프라인 사업자와 별도 홈페이지를 제공하는 온라인 사업자만 남긴 것이죠. 심지어 2019년에는 아마존과도 공식 파트너십을 종료했습니다.

또한 나이키는 제품 라인업도 축소했습니다. 기존에는 수많은 제품군을 생산하다 보니 악성 재고가 생기기 쉬웠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라인업을 25% 정리하고, 인기 제품은 한정판으로 출시하는 방식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축소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나이키는 백화점 노드스트롬의 매장에 영업 직원을 파견하고, 풋로커에 나이키 엑스퍼트를 지원하는 등 파트너십을 맺은 오프라인 매장에는 직원을 파견하고 지원을 확대하였습니다. 그리고 파견된 직원은 현장 판매를 지원하면서 오프라인 데이터를 나이키 본사에 전달하는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이키는 자체 앱(SNKRS, 스니커즈)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체 앱을 통해서 제품을 판매하고, 한정판 제품 추첨(드로우)을 진행하는데요. 나이키는 앱에 방문하는 유저들의 취향과 행동을 데이터로 분석하여 제품 생산 및 오프라인 매장 운영에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그렇게 나이키는 코로나 여파로 사람들이 운동을 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깨고, 2020년에 374억 달러(약 41조 원)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이 줄었지만 예전부터 온라인 채널을 강화해왔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실제로 2020년 4분기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온라인 판매는 84% 증가했으며, D2C 매출은 총 32%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나이키는 앞으로도 D2C와 디지털화에 집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나이키 자체 앱, SNKRS (스니커즈)

나이키가 운영하는 자체 앱, SNKRS(스니커즈)는 한정판 제품 추첨 및 나이키 제품 판매 등의 기능을 제공합니다. 추첨에 응모하기 위해서는 나이키 플러스라는 멤버십에 가입해야 하며, 2020년 기준으로 멤버십 가입자 수는 2억 50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현재 한국에서는 앱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지 않으며, 앱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웹사이트를 이용해야 합니다.

 

 

나이키같이 큰 기업을 설립한 창업자들도 뛰어난 예측력을 갖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창업자들은 나이키라는 '이름'과 심플하고 상징적인 '로고'를 비롯해서, 나이키 브랜딩과 가치 상승에 큰 기여를 한 '마이클 조던과의 제휴'도 잘 될 것이라 예측하지 못했다고 하죠. 그대신 그들에게는 다른 뛰어난 사람을 믿고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매번 자신이 올바른 예측을 하지 못하더라도, 예측을 잘 해줄 뛰어난 인재와 함께했던 것입니다. 저도 성장하기 위해 필 나이트와 빌 바우어만을 본받아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의견을 존중하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과연 여러분은 어떤 점을 느끼셨나요?

 

 

* 출처

- 티타임즈 유투브: https://www.youtube.com/watch?v=1tEqYrAdWVs

- 오피니언뉴스: http://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036

- 일사에프 유투브: https://www.youtube.com/watch?v=s8okK1e-y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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