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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게임사라고 하면 3N이라 불리는 NC소프트, 넥슨, 그리고 넷마블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이 출시되며, 이러한 구도가 흔들리게 되었는데요. 2021년 배틀그라운드의 제작사 크래프톤이 상장하며 이들의 시가총액을 전부 앞지르게 된 것입니다. 비교적 유명하지 않았던 크래프톤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은 크래프톤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크래프톤(당시 블루홀)은 두 명의 경영 전문가(장병규, 김강석)와 네 명의 게임 전문가(박용현, 황철웅, 김정한, 박현규)가 만나서 2007년에 창업한 회사입니다. 우선 장병규는 '네오위즈'를 창업해 코스닥에 상장하고, '첫눈'을 창업해 네이버에 매각한 창업가입니다. 김강석은 네오위즈에서 게임 퍼블리싱 책임을 맡고 있었고, 박용현은 NC소프트에서 2003년에 출시한 리지니2 제작을 총괄한 인물이었습니다. 황철웅, 김정한, 박현규 역시 박용현과 함께 일해온 게임 제작의 전문가들이었죠.
블루홀은 MMORPG 명가를 꿈꾸며 300억 원짜리 초대형 온라인 게임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40~60억 원을 투자하면 대작 게임으로 취급받았는데, 이를 생각하면 엄청난 규모였죠. 그런데 이들의 도전은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박용현팀이 NC소프트에서 개발 중이던 자료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혐의를 쓰게 된 것인데요. 이로 인해서 경찰이 블루홀 압수수색을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소송은 '영업기밀 유출은 인정하지만 손해 배상 책임은 없다'라는 결론으로 2014년에 마무리되었습니다.)
진통이 있었지만 다행히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2008년 3월에는 무사히 프로토타입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소송 리스크로 인해 많은 회사가 투자하기를 꺼려했지만, 경영진의 전문성과 회사의 체계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인정받아 결국 알토스벤쳐스로부터 85억 원의 투자(시리즈A)를 유치하기도 했죠. 마침내 2009년, 개발 중인 프로젝트에 '테라'라는 이름이 붙으며 베타테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테라가 출시되기 전, 블리자드가 출시한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완성도 있는 스토리를 제공하며 게임 스토리에 대한 유저의 기준을 높여놓은 것입니다. 그렇게 기준이 높아진 유저들은, 테라의 스토리에 대해 불만을 표현했죠. 블루홀은 급하게 이를 보완하려 했지만, 촉박한 스케줄과 당장의 문제를 막기에 급급한 상황으로 인해 회사 내부 아트팀, 프로그램팀, 기획팀 간의 분열은 커져만 갔습니다. 그리고 2010년 초에 실시한 3차 베타테스트에서도 유저들의 불만이 지속되었죠.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토로하는 와중에도, 제작 총괄인 박용현은 게임은 충분히 완성도가 있으며 출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일관해왔는데요. 결국 경영진 간에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박용현은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테라의 출시 일정과 예산은 기존 '3년 300억 원'에서 '4년 400억 원'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최대주주이자 이사회 의장인 장병규는 개인 재산을 담보로 연대 보증 계약까지 해가며 부족한 예산을 채우게 되었죠.
베타테스트에서 제기된 불만을 어느 정도 수정한 후, 마침내 2011년 초에 테라가 정식 출시되었습니다. 그리고 초기에 테라는 좋은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동시접속자가 10만 명이면 크게 성공한 게임으로 간주하는데, 테라는 10~20만 명의 동시접속자를 기록한 것입니다. 같은 해에 테라는 일본에 진출하여 동시접속자 3만 명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CEO인 김강석은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화려한 그래픽과 방대한 물량은 유저를 모아 오기에 충분했으나, 스토리 몰입감과 같은 유저를 머무르게 할 유인이 약해 보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머지않아 성과는 떨어졌고,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에 대한 내부의 비난은 점차 증가했습니다.
국내에서 테라의 성과가 떨어지자, 블루홀은 북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테라는 처음부터 북미 시장도 염두에 두고 제작되었기에, 어느 정도 기대도 있었죠. 장병규는 당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주당 100시간씩 일을 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노력 끝에, 2012년 5월 북미와 유럽에서 테라가 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보름 뒤 전 세계의 게이머들을 열광시킨 블리자드의 '디아블로3'가 출시되며, 블루홀의 '테라'는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판매량이 곤두박질치게 되었습니다.
테라에 투자한 비용이 초기에 계획했던 '3년 300억 원'에서 '5년 600억 원'으로 늘어나며, 블루홀의 재무적 위기는 버티기 힘든 수준까지 도달했습니다. 결국 이사회는 전 직원 260명의 20% 정도에 해당하는 인원을 감축하기로 결정했고, 구조조정이 시행되며 회사의 분위기는 점차 안 좋아졌죠. 추가적으로, 블루홀은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테라에 부분 유료제를 도입하고, 판교 사옥으로의 이전을 추진했습니다. 다행히 구조조정과 테라의 부분 유료화로 2013년에는 최대 매출(499억 원)과 세 자릿수의 영업이익(131억 원)을 기록했지만, 이러한 순항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테라 부분 유료화의 성과는 빠르게 떨어지고, 블루홀은 열심히 준비했던 중국 시장에서마저 인기몰이에 실패하며 참패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후 블루홀은 조직 개편을 단행하고, 다양한 개발사가 연합하는 회사가 되겠다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김강석은 제작 연합군으로의 전환에 '블루홀2.0'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정이 어려운 중소 게임 개발사를 만나러 다녔죠. 이 과정에서 '지노게임즈', '피닉스게임즈', '스콜', '마우이게임즈'라는 중소 게임사를 인수하는데요. 이때 블루홀에 합류한 지노게임즈의 공동창업자가 바로 현재의 배틀그라운드를 만든 '김창한'입니다.
조직이 개편되고 다양한 회사가 합류하면서, 내부 분위기는 점차 어수선해졌습니다. 자체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와중에, 자원이 새로운 회사에게 투자되자 기존 블루홀의 제작자들이 불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경영진은 뛰어난 제작 리더십을 마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을 설명했지만,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무산되고, 퇴사하는 제작 담당자가 많아지는 등 상황은 점차 악화되었습니다. 실제로 2016년 블루홀의 퇴사자는 무려 전체 인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204명으로, 입사자 수(175명) 보다 많았죠.
그래도 블루홀은 연합군 덕분에 생존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피닉스 게임즈(합병 후 블루홀피닉스로 사명 변경)의 모바일 양궁 게임 '아처리킹'이 구글과 애플 앱스토어에서 무료 게임 1위를 차지하며 숨통을 틔워주었기 때문입니다. 2015년에 출시한 볼링킹도 글로벌 누적 4천만 다운로드를 돌파하며, 블루홀피닉스는 어려운 블루홀 사정에 도움이 되었죠. 하지만 다른 게임들의 실적 부진으로 2016년에 당기 순손실 249억 원을 기록하며, 블루홀의 긴 터널은 여전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블루홀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 어느 날, 지노게임즈의 공동창업자로 합류했던 김창한이 경영진에게 총싸움 서바이벌 게임 제작을 제안합니다. 예산이 많이 소요되는 게임은 아니었으나,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분야이고 예측이 어렵다는 이유 등을 언급하며 장병규는 번번이 어깃장을 놓았죠. 그러나 김창한이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지속적으로 주장하자, 이사회 의장인 장병규는 해당 게임 카테고리의 원작자를 데려오면 승인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김창한은 배틀로열 게임의 창시자인 브랜든 그린에게 초청 메일을 보내고, 프로젝트 이름도 BRO(PLAYERUNKNOWN's Battle Royal The Original)로 변경합니다. 여기서 플레이어언노운(PLAYERUNKNOWN)은 브랜든 그린이 게임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이죠. 결국 브랜드 그린 초청에 성공한 김창한은 프로젝트에 대한 승인을 받고, BRO는 약 20명의 직원들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약 1년 뒤인 2017년 초, 프로젝트 BRO는 CBT(클로즈 베타테스트)와 얼리 액세스(Early Access) 사전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바로 유저들의 반응이 쏟아졌는데요. 세계 최대 온라인 게임 방송 플랫폼인 트위치에서 2주 연속으로 시청 순위 2위를 차지하고, 사전 주문 3일 만에 판매량 14,444장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김창한은 성공을 확신하고 조직을 키우기 위해 경영진에게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경영진은 CBT의 반응은 일시적인 초기 반응일 뿐이며, 배틀그라운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이를 거부했죠. 왜냐하면 5명을 선정하여 진행한 국내 이용자 테스트에서 대중적이지 못한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고, 국내 퍼블리셔도 비슷한 평가를 내리며 사업 제휴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영진의 생각이 바뀌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배틀그라운드는 중국에서 라이브 중계 영상 시청자 수가 80만 명에 달했고, 32주 간의 CBT 기간 동안 트위치 방송 10위권에 늘 이름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여러 게임업체와 e스포츠팀이 파트너십을 원한다는 러브콜을 보내왔고, 2017년 3월 정식 출시 후 3일간 게임은 무려 35만 장이 판매되었죠. 그렇게 매출 1천만 달러, 동시접속자 5~6만 명을 달성하며 김창한은 블루홀 10년 역사상 처음으로 최고 평가 등급 S를 받은 직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영진도 드디어 성공을 받아들이고 지원을 확대했습니다.
이후 블루홀의 프로젝트 팀 중 하나였던 BRO팀은 PUBG라는 사명을 가진 블루홀의 자회사로 재정비되었습니다. 꾸준히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며 배틀로얄 장르를 개척한 배틀그라운드는 출시된 지 13주 만에 누적 매출 1억 달러, 판매량 400만 장을 돌파했습니다. 전체 판매액의 95%는 해외에서 기록했으며, 스팀 동시접속자는 23만 명, 트위치 동시 시청자 수는 최고 35만 명을 달성했죠.
출시 다음 해인 2018년, 배틀그라운드는 전 세계 유료 게임 중 1위를 차지했습니다. 2018년 말에는 게임 제작의 명가가 되겠다는 뜻을 담아 사명을 크래프톤으로 변경했고, 크래프톤은 적자에 허덕이던 기업에서 2020년 매출 1조 6,704억 원, 영업이익 7,738억 원, 당기순이익 5,562억 원을 기록하는 대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인 2021년 8월, 마침내 코스피에도 상장했죠.
배틀그라운드는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습니다. 크래프톤의 수익이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 하나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크래프톤이 추구하는 게임 제작의 명가가 되기 위해서는 원히트원더를 넘은 성과를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크래프톤은 신작을 출시하며 추가 성장에 도전하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배틀그라운드 IP를 계승한 '배틀그라운드: 뉴스테이트'입니다. 2021년 3분기 출시 예정인 뉴스테이트의 사전 예약자 수는 2,800만 명을 돌파하며 기대를 더해주고 있죠. 이외에도 크래프톤의 독립 스튜디오 '라이징윙스'는 모바일 신작 '캐슬 크래프트'라는 게임의 글로벌 정식 출시를 준비하고 있고, 2022년에는 호러 FPS 게임 '더 칼리스토 프로토콜' 출시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크래프톤은 수많은 실패와 험난한 과정을 거쳐 현재의 성공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게임 제작의 명가라는 더 큰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데요. 과연 배틀그라운드의 흥행을 이을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그리고 진정한 글로벌 게임 명가가 될 수 있을지, 앞으로 더욱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습니다.
*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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