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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아멕스 기업 분석(AMEX)

기업 분석

by 호박너구리의 블로그 2022. 3. 1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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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우리나라에서 많은 분에게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 이하 아멕스)'는 생소한 기업일 것입니다. 반면에 비자(Visa)와 마스터카드(Master Card)는 대부분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이들은 모두 신용카드 결제 네트워크 브랜드로, 국제 제휴를 통해 해외에서도 카드 결제를 가능하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아멕스는 비자와 마스터카드에 이은 글로벌 3위의 결제 네트워크 기업인데요. 유통 기업스러운 이름을 가진 아멕스는 어떤 기업이며, 어떻게 성장해왔을까요? 오늘은 150년이 넘은 전통을 갖고 있고, 신뢰를 기반으로 성장해온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아멕스의 배경: 미국의 성장

아멕스의 창립자들: 헨리 웰스, 윌리엄 파고, 존 워렌 버터필드

아멕스는 사명에 들어간 Express라는 단어의 뜻 그대로, 급행 운송 사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Express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하며 사업을 시작한 인물이 바로 윌리엄 핸든(William Harnden)인데요. 그는 1839년 '핸든스 익스프레스(Harnden's Express)'라는 회사를 차려서 철도를 이용한 화물운반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운송비용을 낮추기 위해 철도 회사와 장기 계약을 체결했고, 안정적으로 사업하기 위해 가격을 높여서 독점 계약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 당시의 미국은 운송 사업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1803년에 중부 루이지애나 지역을 프랑스에게, 1819년 남부 플로리다 지역을 스페인에게 차례로 매입하며 영토가 넓어지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이로 인해 사람뿐 아니라, 물건이나 우편물을 운반할 일이 많아진 것입니다. 그렇게 좋은 시기에 적합한 전략을 갖춘 핸든의 사업은 승승장구하며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후 핸든은 미국의 5대 호수 중 하나인 이리호에서 운하를 오가며 운송업을 하던 헨리 웰스(Henry Wells)를 만나 함께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육로와 수로를 넘나들며 운송 사업을 진행했고 빠르게 성장했지만, 1년도 안되어서 의견 대립으로 갈라서게 되었죠. 1841년 다시 독립한 웰스는 투자를 받아, 투자자 중 한 명의 이름을 딴 '리빙스턴 앤 컴퍼니'(Livingston & Company)를 설립했습니다.

(당시 웰스가 채용한 인물 중에는 윌리엄 조지 파고라는 배달원이 있었는데, 훗날 그는 현재 미국 4대 은행 중 하나인 웰스 파고 앤 컴퍼니(Wells Fargo & Company)를 설립하게 됩니다.)

 

1845년 윌리엄 핸든이 사망하자 웰스는 핸든의 운송사업까지 인수하게 됩니다. 그리고 1848년에 초기 투자자인 '크로우포드 리빙스턴'이 세상을 떠나고, 웰스는 뉴욕 서부의 급행 편 사업을 리빙스턴의 동생과 파고에게 팔았는데요. 그렇게 '리빙스턴 앤 컴퍼니'는 '웰스 앤 컴퍼니'와 '리빙스턴 파고 앤 컴퍼니'로 나뉘게 됩니다.

 

 

아멕스의 시작: 골드러시와 기업 합병

아멕스 로고의 변화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의 서부지역은 황무지였습니다. 그러나 1848년에 금광이 발견되며, 30만 명의 사람들이 '황금의 땅'이라고 불리는 캘리포니아 지역으로 모여들게 되었죠. 그렇게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로 인해 서부 개척시대가 열렸고, 운송업의 수요 증가로 웰스의 사업은 나날이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블루오션 시장에는 경쟁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마차의 마부였던 존 워렌 버터필드라는 인물도 운송업의 시장성을 보고, 1849년 '버터필드 왓슨 앤 컴퍼니'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급행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웰스와 버터필드는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앞다투어 가격을 낮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경쟁이 심화되어 수익성이 악화되었고, 결국 두 회사는 합병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때 소식을 들은 리빙스턴 파고 앤 컴퍼니도 함께할 의사를 내비쳤는데요. 마침내 1850년에 3개 회사가 각각 5만 달러씩 출차하며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가 창립되었습니다.

 

미국 전역에 급행편을 구축하겠다는 의미의 이름을 지닌 아멕스는 골드러시의 전성기와 맞물려 꾸준히 사업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아멕스는 어떤 경우에도 약속을 지킨다는 신조를 갖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일례로 아멕스는 1855년에 아이오와 주 정부로부터 요청받은 5만 달러를 분실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범인은 잡았지만 돈은 끝까지 찾아내지 못했죠. 배상의 의무가 없는 상황에도 아멕스는 주 정부에게 5만 달러에 이자까지 덧붙여 전액을 지불했고, 아멕스는 이후에도 신뢰를 쌓으며 성장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아멕스의 성장: 운송업을 넘어 금융업과 여행업으로

아멕스의 트래블러스 체크

사실상 독점의 지위를 차지한 아멕스는 1862년에 이미 약 1500명의 사원과 890개의 대리점 사무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는 미국 전역의 우체국 수보다 많았죠. 그러던 1881년 아멕스의 설립자 중 한 명인 윌리엄 파고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동생인 조지 파고가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듬해 우체국이 사용하던 머니오더 방식을 차용한 자체 서비스를 시작했는데요. 머니오더 방식이란 송금자가 실제 돈을 직접 보내지 않고, 보내고자 하는 현금의 금액이 적힌 '머니오더'를 구매하여 보내는 방식입니다. 이는 직접 현금을 보내는 것보다 안전하고 저렴한 방법이었습니다.

 

많은 사업장을 지닌 아멕스는 머니오더 사업을 빠르게 확장시켰고, 1890년대 말에 들어서는 머니오더의 연간 매출이 350만 달러나 되었습니다. 이런 머니오더 사업은 아멕스가 금융업에 진출하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머니오더를 보내고 받을 때까지 실제 자산이 아멕스에 머물러있는 유보 자산이 되었기 때문인데요. 아멕스는 유보 자산을 투자에 활용하며 막대한 수익을 거두었고, 그렇게 아멕스는 운송업에 이어 금융업에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아멕스의 머니오더는 계속 확장되었습니다. 유럽에서 이민 온 사람들도 많이 이용하기 시작할 정도였죠. 당시 아멕스가 유럽에 진출하지 않았음에도 아멕스의 머니오더는 현금과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고, 이민자들은 미국에서 번 수익을 머니오더로 유럽의 가족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파악한 아멕스는 해외에서도 머니오더를 현금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그렇게 아멕스는 유럽 여러 나라에 있는 50여 곳의 은행과 계약을 맺었고,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멕스는 이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신용장을 대체하는 여행자 수표를 만든 것인데요. 신용장이란 예금자가 거래 은행에 청구하여 받는 증서로, 신용장만 갖고 있으면 해외의 다른 은행에서 자유롭게 돈을 출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용장 방식은 본인 확인을 위해 거래 은행이 해외 은행과 본인 확인 목적의 우편을 주고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해외 은행이 환율을 자의적으로 설정하여 환율 사기를 당하기도 쉬웠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멕스는 여행자 수표의 왼쪽 상단에 사인을 미리 해두고, 나중에 우측 하단에 동일한 사인을 하는 방식으로 본인 확인 절차를 간소화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현대 사람들이 신용카드 뒷면에 서명을 해두고, 결제할 때 동일한 서명을 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죠. 또한 아멕스는 유럽의 환율을 수표에 미리 기재하여 환율 변동과 상관없이 환전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는데요. 많은 노력 끝에 1891년, 세계 최초의 여행자 수표 '트래블러스 체크'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아멕스의 유럽 담당자는 유럽에서 트래블러스 체크를 확산시키기 위한 방법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마침내 그가 생각한 방법은 바로 여행객을 타겟으로 한 전략이었습니다. 아멕스는 여행객을 사로잡기 위해 사무실에서 관광 안내, 호텔 예약 등 여행자들을 위한 무료 상담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전략은 성공적이었고, 실제로 유럽을 여행하는 미국인들은 아멕스의 사무실을 찾게 되었습니다. 트래블러스 체크 판매량도 덩달아 급증했죠. 이후 각 영업소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배표도 팔게 되면서, 아멕스는 자연스레 여행 사업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아멕스의 위기: 전쟁과 경제 대공황 속에서도 지킨 신뢰

미국의 대공황 시기

아멕스의 사업이 항상 탄탄대로를 걸어왔던 것은 아닙니다. 아멕스의 위기는 세계 1차 대전으로 시작되었는데요. 1917년에 미국이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철도 운송 체계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드로 대통령이 전미 철도를 국유화하고 모든 급행편 회사를 통합하기로 결정하면서, 아멕스는 회사의 근본이 되었던 급행편 사업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아멕스는 새로운 돌파구로 무역업을 선택하여 중국의 물건을 들여왔지만, 머지않아 전 세계에 경제 불황이 닥쳤습니다. 중국에서 구입해온 마작 패와 5만 개의 유리구슬, 화병 등은 모두 창고에 방치되었고, 외국 무역본부는 폐지되었죠. 당시의 아멕스는 트래블러스 체크와 머니오더로 간신히 회사를 유지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던 1929년 세계 대공황이 시작되었습니다. 1933년에는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휴업 조치를 내려 전국 은행의 영업이 중지되기도 했는데요. 아멕스는 이런 상황에서도 몰려드는 고객들에게 끝까지 현금 인출을 허용했습니다. 이후 세계 2차 대전 시기에도 금융 서비스를 유지하며, 아멕스의 상황은 점차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아멕스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는 크게 상승하게 되었죠.

 

 

아멕스의 현재와 미래: 신뢰를 기반으로 한 꾸준한 성장

아멕스의 분기별 매출과 성장률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은 유럽 부흥 계획인 '마셜 플랜'을 발표합니다. 아멕스는 이를 활용하여 '유럽을 여행하면서 돈을 쓰는 것 자체가 경제 원조의 일환'임을 강조하며 유럽 여행을 장려했는데요. 때마침 대형 비행기도 개발되며 유럽 여행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트래블러스 체크 사업이 부활하며 아멕스는 성장을 이어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950년, Diners Club Card라는 최초의 신용 카드 사업이 등장했습니다. 신용카드는 몇 년 안에 미국인의 필수품이 되었고, 여러 분야의 회사들이 앞다투어 신용카드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멕스 역시 신용카드 사업 진출을 고민했지만, 신용카드가 트래블러스 체크와 포지션이 겹친다는 것을 이유로 쉽게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신용카드 시장은 계속 커져갔고, 결국 아멕스도 고민 끝에 신용카드 사업에 진출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인 1958년 10월에 첫 신용카드를 발송했음에도, 그간의 신뢰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요. 그렇게 아멕스가 처음 보낸 카드만 무려 약 25만 장에 달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멕스의 최근 매출을 살펴보면 코로나 영향을 받은 2020년 무렵을 제외하곤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가 역시 코로나 초반을 제외하면 지난 5년간 꾸준히 우상향해왔는데요. 아멕스의 가입자 수는 다른 결제 네트워크 브랜드에 비해 적지만 부유층 고객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매출은 타사 대비 비슷하거나 큰 상황입니다. 그리고 2021년 4분기에는 17억 달러의 이익을 남기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는데, 이는 코로나 이전에 매출의 30%를 차지하던 여행 분야의 소비가 20%로 줄었음에도 달성한 호실적입니다.

 

아멕스는 2022년 자사 실적도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끝나면 여행 분야의 소비가 돌아오고 실적 상승의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2021년 아멕스 카드 신규 가입자의 60%가 MZ세대이고, 해당 세대의 결제액도 2019년 대비 50% 증가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자신감을 보여주듯, 아멕스는 오랫동안 동결되어왔던 배당을 20% 증가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긍정적인 전망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MZ세대의 결제 금액이 증가했지만, 현재 소비력이 큰 장년층 소비가 정체 상태이기 때문인데요. 이에 더해 최근에 떠오르는 후불 결제 시스템인 BNPL의 약진도 신용카드 업계에게 위험으로 판단되고 있습니다.

 

아멕스의 신용카드

저는 이번에 아멕스의 역사를 공부하며 다시금 신뢰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아멕스가 숱한 위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단순히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것뿐만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지켜왔던 신뢰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매출은 단기적으로 조절할 수 있지만 신뢰는 쉽게 얻을 수 없는 장기적인 자산인 것 같습니다. 오늘의 분석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저도 앞으로 신뢰를 지키며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참고 자료

-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americanexpress&logNo=220895941434

- 앤츠랩: https://maily.so/antslab/posts/f715a6a0?mid=b2ce13

- 세상의 모든 지식: https://www.youtube.com/watch?v=tCABKkxQ_bA&list=PLl7wNqgm5ErSNBZvJVUgwWkBXpAnuuY0o&index=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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