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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은 어떻게 항공 산업을 이끌어왔을까? Boeing 기업 분석

기업 분석

by 호박너구리의 블로그 2022. 2. 2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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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꿔왔습니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지금은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지 못하지만) 비행기로 인해 우리는 지구 반대편도 하루 안에 갈 수 있게 되었죠. 비행기가 사람들의 이동을 도와준 덕분에 이탈리아와 그리스 같은 국가는 관광으로 큰 수입을 얻고 있으며, 호텔, 카지노, 테마파크 등의 다양한 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는 큰돈을 벌지 못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시대에 맞게 비행기를 제조하며 성장해온 기업을 떠올려보면, 많은 사람들은 보잉을 떠올릴 것 같은데요. 오늘은 항공 산업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큰 역할을 맡아온 보잉(Boeing)에 대해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보잉의 시작: 비행기 덕후인 사업가 윌리엄

현재 글로벌 항공 우주기업인 보잉을 설립한 윌리엄 에드워드 보잉(William Edward Boeing)은 1881년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습니다. 여덟 살의 나이에 인플루엔자로 아버지가 사망하고, 이후 어머니가 재혼하며 떠나자 윌리엄은 양아버지에게 길러지게 되었는데요. 다행히 윌리엄은 명문 기숙학교에 보내져 교육을 받았고, 1902년 예일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입학한 다음 해인 1903년, 윌리엄은 사업을 하기 위해 학교 중퇴를 결정합니다. 그는 중퇴 후 워싱턴 주 호퀴엄으로 이사한 뒤, 임야를 사들였습니다. 그리고는 친구 휴이트와 목재 사업을 시작했는데요. 마침 당시는 미국이 급성장하던 시기로, 새로운 주택을 짓기 위한 목재 수요가 많았습니다. 덕분에 윌리엄의 사업도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죠.

 

보잉 블루빌

 

그러던 1910년 1월, 윌리엄은 캘리포니아 남부를 여행하다 미국 최초의 국제 항공대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윌리엄은 비행기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사교 클럽에서 만난 친구 웨스터벨트와 비행기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며 비행기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비행기를 꼭 한 번 타보고 싶어 했던 윌리엄은 직접 비행사를 고용하여 항공쇼를 기획하기도 했는데요. 비행기를 타본 후, 그는 자신이 직접 더 좋은 비행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윌리엄은 LA에 있는 글렌 루터 마틴 비행학교에서 조종 수업을 수료하고, 수상 비행기를 한 대 구입했습니다. 그리곤 목재 사업으로 번 돈을 투자하여 자신의 친구 웨스터벨트와 직접 수상비행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요. 그들은 시애틀 유니언 호수에 있는 작은 조선소를 인수하여, 격납고와 공장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16년 6월 최초의 보잉 비행기 블루빌(Bluebill)이 첫 비행에 성공하자, 윌리엄은 7월에 퍼시픽 에어로 프로덕츠(Pacific Aero Products)를 설립하였습니다.

 

 

보잉의 성장: 제조를 넘어 항공우편과 여객기 사업으로

보잉 모델 40

이후 엔지니어가 합류하고, 보잉은 모든 설계를 자체 개발하여 모델 C를 출시했습니다. 1917년 4월부터 사명을 보잉 에어플레인 컴퍼니(Boeing Airplane Company)로 변경하고 판매를 시작했는데, 마침 같은 해에 미국이 독일에 선전 포고하며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하게 되었죠. 기회를 파악한 윌리엄은 미군에 비행기의 중요성을 설득하며 약 50대의 비행기를 판매하는 데 성공했고, 전쟁 덕분에 보잉의 비행기 사업은 초기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세계 1차 대전이 끝나자, 보잉의 매출은 절반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매출 확대에 대해 고민하던 윌리엄은 가장 먼저 우편배달에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1919년 3월에 자신을 위해 만든 비행기(모델 C700)를 타고 캐나다 밴쿠버에서 시애틀로 가는 국제 우편을 처음으로 배달해보았는데요. 우편 사업의 가능성을 확인한 윌리엄은 우편 운송 전용 비행기(모델 40)를 개발했습니다. 이후 보잉은 미국 우체국으로부터 샌프란시스코와 시카고 간의 우편 계약을 따내고, 1927년에는 보잉 에어 트랜스포트(Boeing Air Transport)라는 항공사를 설립하였습니다.

 

보잉 247

 

당시 운송용 비행기로 사용하던 모델 40A는 조종사 외에 2명의 사람이 더 탈 수 있었습니다. 보잉 에어 트랜스포트는 그렇게 여객기 사업도 시작했는데요. 비행기는 리뉴얼 과정을 거쳐왔고, 1928년에는 여객 수송 전용기(모델 80)로 12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윌리엄은 보잉 에어 트랜스포트를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스(United Airlines)로 변경하며, 계속해서 항공우편과 여객기 사업을 성장시켰습니다.

 

보잉의 산업이 성장하는 만큼, 여객기도 점차 개선을 거듭했습니다. 1930년에는 위아래로 날개가 두 개였던 기존의 복엽 방식에서 금속 날개 한 겹으로 비행하는 캔틸레버 방식을 도입했으며, 1933년에는 미국 최초의 완전 금속제 유선형 여객기 보잉 247을 개발했습니다. 이러한 기술 발전 덕분에 미국 횡단 시간이 기존 27시간에서 19시간 30분으로 단축되었으며, 비행기에 많은 기능이 추가되었는데요. 현재 당연시되는 개별 좌석, 독서를 위한 실내등, 난방, 환기, 화장실, 방음 시스템 등이 이 당시 도입된 것입니다.

 

물론 보잉은 군용기도 계속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1920년대에는 모델 15를 개발하여 미군에 150대 이상 공급했으며, 1931년에는 머신건 2개와 2400파운드의 폭약을 수송할 수 있는 폭격기 B-9를 개발하기도 했죠.

 

보잉의 변화: 회사의 분리와 비행기의 발전

보잉 707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스는 보잉의 최신 항공기 57대를 구입하며 점차 거대 항공사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던 1934년, 미국 정부가 독점금지법을 근거로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스의 항공기 제조와 여객 사업을 분할하도록 명령하는데요. 결국 회사는 항공 운송 사업을 영위하는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스(United Airlines)와 미국 동부 항공기 제작을 맡은 유나이티드 에어크래프트(United Aircraft), 그리고 미국 서부 항공기 제작을 맡은 보잉 에어플레인 컴퍼니(Boeing Airplane Company)로 분리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윌리엄은 은퇴하여 말과 소를 기르며 여생을 보내게 되었죠.

 

그래도 보잉의 비행기는 계속 진화했습니다. 우선 보잉이 개발한 B-17(모델 299) 폭격기는 날아다니는 요새라고 불리며, 세계 2차 대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선보였습니다. 사실 악명 높은 B-17도 1939년까지는 60대밖에 판매되지 않았는데요.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고 진주만 전투로 미국이 참전하고 나서야 판매가 증가하여, 1945년까지 총 12,713대가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44년에는 1톤의 화약을 탑재하고 8000km를 비행할 수 있도록 B-29가 개발되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때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보잉은 군용기 사업에서는 크게 성장했지만, 민간기 시장에서는 더글라스(McDonnell Douglas)에게 밀리고 있었습니다. 보잉이 민간기 시장에서 이름을 날린 것은 1950년대 개발한 보잉 707 덕분인데요. 중/장거리용 제트 엔진 수송기인 보잉 707은 팬 아메리칸 월드 항공(Pan American World Airways)에게 20대 판매되는 것을 시작으로, 여러 항공사에 인도되었습니다. 팬 항공의 보잉 707은 뉴욕에서 파리로 비행하며, 세계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한 제트 여객기로 기록되기도 했죠. 이를 계기로 팬 항공은 미국발 국제선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으며, 팬 항공과 보잉은 같이 성장했습니다. 보잉은 결국 더글러스를 꺾고 민간항공기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보잉의 현재와 미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성장할 수 있을까

보잉의 매출 추이 (출처. Statista)

1997년, 보잉은 오랜 경쟁사였던 더글라스를 인수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에 록웰 인터내셔널(Rockwell International)의 항공 및 우주비행 분야를 인수하며 우주 산업에 진출했는데요. 보잉은 이후 오랜 기간을 우주 사업에 공들여왔습니다. 현재는 세 가지 사업부문 중에서 가장 높은 매출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우주 산업이 포함된 방산/우주 부문이죠. 실제 보잉의 매출을 살펴보면, 2021년 매출은 약 623억 달러(한화 약 7.43조 원)로 상용 항공기(Commercial Airplanes) 부문이 약 28%, 방산/우주(Defense, Space & Security) 부문이 약 45%, 물류 및 교육 등을 포함하는 글로벌 서비스(Global Service) 부문이 약 27%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보잉의 매출은 2018년에 1,011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후 급격히 하락했습니다. 매출 하락의 첫 번째 이유는 미중 분쟁이 심해진 2018, 2019년 즈음부터 중국의 주문이 끊겼기 때문입니다. 원래 보잉 항공기 중에서 25%를 중국 항공사에 판매해왔는데, 주문이 줄어들자 매출이 급감한 것이죠. 여기에 코로나19 확산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여행객이 줄어들고 많은 항공사가 어려워지자, 여객기 주문이 줄어서 보잉은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또한 잇따라 터진 비행기 사고도 보잉에게 악영향을 주었습니다. 2018년 10월에 이어 2019년 3월에 보잉 737 맥스 기종이 추락사고를 내서 운항이 정지되자 브랜드 이미지가 손상되고, 해당 기종의 인도가 늦어지게 된 것입니다.

 

보잉이 개발 중인 유인우주선, 스타라이너

 

비록 현재 실적은 나쁘지만, 부정적인 전망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백신 보급과 위드 코로나를 선언한 국가가 늘어나면서 여행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보잉은 2021년 말까지 직원 수를 13만 명으로 줄일 방침이었으나, 항공기 수요가 늘면서 인력을 14만 명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또한 사고로 운항이 정지된 보잉 737 맥스 기종도 세계 각국에서 다시 운항 재개 승인을 받았습니다. 

 

장기적으로 우주 분야의 실적 개선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우선 보잉은 영국의 버진갤럭틱과 제휴하여 위성 발사 사업 전문 자회사 버진오빗에 투자했습니다. 버진오빗은 지상 발사대에서 로켓에 실어 발사하는 기존의 위성과 달리, 개조한 보잉 747 항공기를 이용해 위성 발사용 로켓을 쏘아 올리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또한 보잉은 자체적으로 유인우주선 '스타라이너'를 개발 중에 있는데요. 국제우주정거장(ISS)를 오가며 승객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7인승 우주선으로, 올해 시험 발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항공기 산업의 대표주자 보잉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100년 넘게 항공기 산업을 이끌어온 보잉도 코로나로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경각심을 주는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항공기 사진을 보다 보니, 어서 코로나가 끝나고 여행 가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참고자료

- 한경 글로벌마켓

- 브랜드 백과사전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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