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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분석: 사업은 수단, 목적은 지구

기업 분석

by 호박너구리의 블로그 2021. 12. 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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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글은 뉴스레터 위클리 호박너구리에서 먼저 다루었습니다. 매주 유익한 경영/기업/산업 분석에 대한 글을 받아보고 싶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보세요:)

 

 

소비의 대목인 블랙 프라이데이에 자사의 제품을 구입하지 말라고 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바로 파타고니아(patagonia)인데요. 지금보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덜하던 2011년, 파타고니아는 환경을 위해서는 사람들이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취지에서 다음과 같은 광고를 뉴욕타임스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파타고니아의 환경에 대한 철학은 더욱 유명해졌죠. 

 

저는 그동안 파타고니아를 환경 마케팅을 하는 수많은 기업 중 한 곳으로만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본 쉬나드'가 출판한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을 읽고 생각이 달라졌는데요. 과연 '지구가 목적이고 사업은 수단'이라고 말하는 파타고니아는 어떻게 시작되고 성장해왔을까요? 그리고 지구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길래 제가 생각을 바꾸게 되었을까요? 오늘은 한 번 파타고니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파타고니아의 시작: 등반가와 대장장이

파타고니아의 창업자인 이본 쉬나드는 1938년 메인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족은 1947년 남부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는데, 어린 시절 이본은 작은 키와 여자 아이 같은 이름으로 놀림을 받았습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는 이본을 외톨이로 만들었고,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혼자 길을 건너는 것조차 허용 되지 않을 때, 이본은 자전거를 타고 10km 거리의 골프장 호수까지 가서 경비들의 눈을 피해 낚시를 하곤 했습니다. 방과 후에는 강이나 공원에 가서 개구리와 토끼를 잡기도 했죠.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던 이본은 14살 때 레펠링(rappelling, 가파른 절벽을 고정된 로프에 의지해 미끄러져 내려오는 하강 방법)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목에 줄이 감겨서 죽을 뻔한 위기가 생기기도 했지만, 매년 티턴 산맥에 가서 3개월 동안 등반을 하거나 낚시를 하는 등 모험과 액티비티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죠.

 

1956년에 이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제 지방대학에 들어갔습니다. 학교가 쉬는 날이면 친구들과 서핑을 하러 가고,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기간에는 등반을 다녔죠. 그리고 이듬해 이본은 거벽 등반 훈련을 위해 요세미티로 향했습니다. 며칠간 이어지는 등반을 위해서는 수백 개의 피톤(암벽 등반에 사용되는 도구로, 갈라진 바위의 틈에 끼워 넣어 중간 확보물로 사용하는 금속 못)이 필요했는데, 당시 피톤은 연철로 만들어져 재사용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이본은 등반 장비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하고, 고철상에서 석탄을 때는 중고 화덕과 60kg이 넘는 모루, 집게와 해머들을 구입해 대장간 일을 독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본은 곡식을 자르는 기계의 날로 첫 피톤을 만들었고, 이본이 만든 피톤은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전해졌습니다. 쇠를 달궈 한 시간에 피톤 두 개를 만들고 한 개당 1.5달러에 판매했는데, 당시 이본은 이게 사업의 시작이라는 생각도 없었죠. 몇몇 사람들이 구매하기는 했으나, 이윤은 매우 적었습니다. 그렇게 이본은 고양이 먹이로 쓰는 통조림을 사 먹거나, 다람쥐와 고슴도치를 잡아먹기도 하며 등반을 계속했습니다. 이후 영장이 날아와 한국으로 파병됐지만, 1964년 명예 제대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다시 등반 장비 만들기 시작했죠. 그리고 그 해에 드디어 '쉬나드 이큅먼트'의 첫 카탈로그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 파타고니아의 성장: 등반가를 위한 옷의 탄생

쉬나드가 만든 장비에 대한 수요는 점차 늘어났고, 쉬나드 이큅먼트는 1970년에 미국 최대의 등반 장비 회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환경 파괴의 장본인이 되는 길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같은 바위에 피톤을 박고 빼는 일이 되풀이되었고, 암벽들이 흉하게 망가진 것입니다. 엘 캐피탄 봉우리의 깨끗했던 루트가 형편없이 망가진 것을 본 후, 쉬나드는 핵심 사업인 피톤 제작 사업을 접기로 결정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피톤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낮은 품질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알루미늄 초크가 크랙에 박지 않고 암벽에 걸 수 있는 좋은 대체 장비가 된 것입니다. 쉬나드 이큅먼트는 제품을 발전시켜 1972년 카탈로그에 자사의 알루미늄 초크를 처음 소개했습니다. 비록 피톤 판매는 줄어들었지만, 초크는 빠른 속도로 팔려나갔죠.

 

파타고니아는 비슷한 시기에 의류 사업도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사람들은 야외 활동에서 밝은 색깔의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액티브 스포츠웨어'라고 해도 회색 맨투맨에 바지가 전부였죠. 그러던 1970년 겨울, 스코틀랜드로 등반 여행을 떠난 쉬나드는 럭비 셔츠가 암벽 등반에 적합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셔츠를 구매합니다. 럭비 셔츠는 질기고 튼튼했으며, 목 부분 칼라는 장비를 매단 슬링 때문에 목이 쓸리는 것을 막아주었기 때문인데요. 그렇게 쉬나드가 미국에 돌아오자, 실용성과 화려한 색상을 갖춘 럭비 셔츠는 주변 등반가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가능성을 확인한 쉬나드는 영국의 스포츠웨어 회사 엄브로에서 셔츠를 주문해서 판매했고, 판매량이 늘어나자 추가적으로 뉴질랜드와 아르헨티나로부터 셔츠를 주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쉬나드는 이때 의류 사업을 통해 마진이 적은 장비 사업을 뒷받침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당시 쉬나드 이큅먼트의 등반 장비 시장 점유율은 75%나 됐지만, 여전히 이윤이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쉬나드는 1972년에 버려진 정육 공장을 인수해서 소매점으로 개조한 후, 의류 라인을 하나씩 늘려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더 많은 의류를 만들게 되며 의류 라인에 대한 이름이 필요해졌고, 이때 탄생된 브랜드가 바로 '파타고니아'입니다.

 

# 파타고니아의 철학: 더욱 뚜렷해진 환경에 대한 가치관

파타고니아는 의류 사업을 시작한 이후, 원단을 꾸준히 개선해왔습니다. 황갈색과 짙은 황록색이 전부이던 아웃도어 제품에 다채로운 색상을 도입하기도 했죠. 기능과 디자인을 모두 갖춘 파타고니아의 의류 판매량은 갈수록 증가했습니다. 그렇게 파타고니아의 인기는 아웃도어 시장을 넘어 전반적인 패션 업계로 확장되었고, 파타고니아의 매출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까지 2000만 달러에서 1억 달러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매년 30~50%씩 성장하던 파타고니아도 1991년이 되자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불황이 찾아오자 판매량은 급격히 줄었고, 자금을 대출해 준 은행들도 자금난을 겪게 되었습니다. 파타고니아도 비용을 대폭 줄이고 투자를 중단했죠. 그럼에도 상황이 좋지 않아 창업 후 처음으로 직원을 해고했는데, 그 수는 전체 직원의 20%인 120명에 달했습니다. 

 

이렇게 성장과 위기를 겪으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파타고니아만의 문화와 철학인데요. 파타고니아의 직원들은 이미 예전부터 자유롭게 옷을 입고, 맨발로 사무실을 돌아다녔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달리기를 하거나 서핑을 하러 나갔고, 사무실 뒤 공터에서 배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파타고니아는 1984년부터 칸막이를 없애고 사무실을 열린 공간으로 바꿨습니다. 유기농 음식을 제공하는 직원 식당을 만들고, 당시 미국에서 150곳만 존재했던 사내 어린이집을 운영하기도 했죠.

 

파타고니아는 환경에 있어서도 점차 뚜렷한 가치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미 1985년부터 지역의 환경단체에 매년 세전 수익의 10%와 매출의 1% 중 큰 액수를 기부해왔고, 회사 존재의 목적을 '지구'와 '환경'으로 명시해두었습니다. 1996년부터는 모든 면직 의류를 유기농으로 키운 목화로 만들었는데요. 이에 대해 파타고니아는 합성염료와 면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구매자를 호도하지 않기 위해, '유기농 의류'라고 표현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재배된 목화로 만들어진 옷'을 만든다고 표현합니다. 또한 파타고니아는 독성이 적은 염료 사용을 추구하는데, 주황색은 독성을 줄이기가 힘들어서 해당 색상의 의류는 아예 생산하지 않았다고 하죠.

 

# 파타고니아의 현황 및 전망: 의류 회사를 넘어 환경 기업으로

아무리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해도, 매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업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파타고니아가 안정적으로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파타고니아의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파타고니아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2012년 의류 사업을 넘어 식품 사업에도 진출했습니다.

 

사실 의류 사업은 환경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어도 감소시킬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친환경 에너지와 유기농 제품만을 사용하더라도 결국에는 버려질 수밖에 없는 소비재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식품 사업은 다릅니다. 파타고니아가 보기에 현재 대부분의 농법은 토양을 파괴하는 방식이지만, 식품 제조 과정에서 적절한 만큼만 유기농으로 생산한다면 오히려 탄소 배출을 줄이고 순환하는 자연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렇게 파타고니아는 사람들의 식탁에 올라가는 모든 음식이 친환경적으로 생산되고 유통되도록 만들기 위해 식품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공정무역으로 소싱한 코코넛 오일, 유기농 맥주, 야생 훈제 연어, 항생제 사료를 먹이지 않고 자란 버팔로 육포 등을 만들며, 식품 생태계에 기여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환경을 위한 식품 사업 투자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많은 스타트업은 적자를 감수하면서 투자를 받고 사업을 확장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많은 기업들은 소비자의 불편을 해결하고 소비자 후생을 증가시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파타고니아는 다릅니다. 파타고니아는 소비를 줄여야 하고, 빠르게 성장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목표는 '큰 회사가 아니라 최고의 작은 회사'라고 말하며, 오랫동안 지속되며 환경에 기여할 수 있는 기업이 되기를 추구하고 있죠. 과연 파타고니아는 어떻게 될까요? 앞으로 파타고니아가 만들어갈 지구의 모습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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